• 살림살이 유전자, 들어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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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없어서 이토록 지난하게 직장 생활에 다양한 부업까지 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는 나의 꿈은 전업주부다. 이 꿈을 말하면 대부분이 되묻는다. 

“니 성격에 그게 되겠냐? 너 지겨워서 못 버틸걸. 노는 건 뭐 쉬운 줄 아냐?”

다양한 베리에이션으로 전달되지만 핵심 메시지는 요약하면 위와 같다. 이해가 안 된다. 외부에 나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이 지겨울 정도로 노는 일인가. 대체 그들에게 있어 ‘살림’은 무엇이란 말인가.



살림이 이토록 평가절하된 까닭은 아마도 이것이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 생활도 다르지 않다. 출퇴근과 월급이라는 이벤트가 있으니 티가 나는 거지, 회사 안에서 보면 또다시 몇 명의 스페셜리스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누구는 굳이 사무실에서 거래처와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고, 타 부서에 소란스레 시비를 건다. 모두 ‘나 일하는 것을 알아달라’는 절절한 외침이다.



하우스키핑 유전자라는 것이 있다. Housekeeping, 전업주부 유전자다. 살림살이를 노느라 지겨운 일로 치부하는 인식으로는 하찮은 유전자인가 하겠지만, 정반대다. 하우스키핑 유전자는 세포의 존망과 직결된 아주 근본적인 기능의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특정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다. 언제나 늘 같은 정도로 발현을 유지하고 있다. 오르내림이 없다. 그래서 PCR 따위의 실험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 코로나로 세간에 꽤나 익숙해진 PCR은 특정 유전자를 잔뜩 복사해낼 수 있는 기술이다. 단순히 복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을 비교해야 하는데 이때 반드시 기준이 필요하다. 많고 적음은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우스키핑 유전자가 사용된다. 조건에 따라, 조직에 따라 발현 양이 변하는 유전자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언제나 같은 정도로 발현하는 하우스키핑 유전자가 기준을 잡아주어야 우리는 PCR을 통해 얻은 결과가 맞는지 틀린 지를 판단할 수 있다. 코를 찌르고 PCR 검사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하우스키핑 유전자 덕분에 내가 감염되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환경의 변화에 상관없이 묵묵하게 제 할 몫을 하는 특징 덕분이다. 



내 꿈이 전업 주부인 까닭은 제대로 살림을 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시나브로 쌓이는 먼지를 매일 닦고, 환기를 하고, 정성껏 끼니를 차려내고, 식자재의 입출을 관리하고, 침구를 관리하고, 욕실을 보송하게 유지하고, 서재의 책을 나름의 큐레이션으로 정리하고, 철마다 드레스룸을 새롭게 셋업 하고 커튼과 실내화를 바꾸고, 집안 곳곳에서 늘 기분 좋은 향기가 나도록 가꾸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죽 쒀서 개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직장 생활과 달리, 내 집안 살림은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오롯한 나를 위한 노력이다.



인간의 정신이 무너질 때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신호가 있다. 하나는 생존과 직결된 본능적인 욕구의 조절이 무너지는 것, 또 하나는 본인과 주변을 가꾸고 정돈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수많은 사회고발 프로그램에서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이 집안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서 방치하고, 본인의 몸도 학대 수준으로 방치하는 것을 봤다. 이것은 역으로, 정돈된 살림이 얼마나 고도의 정신적 활동을 필요로 하는지의 증거이기도 하다.



집에서 살림만 하기에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도, 직장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쇼맨이 아니어서 억울한 사람도, 모두가 시스템의 유지에 필요한 ‘키퍼’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축구 황제 펠레는 축구는 스타가 아닌 팀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한 집단은 다양한 역할의 플레이어들로 구성되게 마련이다. 피부피부 팀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칼럼니스트 개인의 생각으로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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