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감상실]반갑지 않은 겨울 손님, 각질 - 2


각질,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


각질형성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해서 위로 올라오고, 죽어서 각질이 되어 쌓인다. 우리 피부의 든든한 보호막을 만들기 위해 각질 단백질들이 이 죽은 세포 조각들을 서로 이어 붙여서 각질층을 만든다. 계속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각질은 먼저 있던 가장 바깥의 각질들을 밀어낸다. 단백질 분해 효소가 각질 단백질을 잘라내서 각질들이 떨어져 나가게 한다. 각질은 바깥쪽에서부터 떨어져 나가야 한다. 피부는 깊이에 따라 다른 산성도를 가짐으로써 각질의 탈락을 조절한다. 매일, 지금 이 순간에도, 각질을 만들고, 쌓고, 떼어내고, 방해하는 이 복잡한 일들이 우리 피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여전히 궁금하다. 각질이 정말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과도하게 각질을 제거하고 나면 피부가 따갑고 예민해지긴 한다. 그러나 며칠쯤 지나면 회복하지 않던가. 각질이 아예 생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또는 각질이 생기는데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각질 조절에 문제가 생긴 유전병이 있다. ‘할리퀸 어린선’ 이라는 이름의 유전병이다.


어린선의 어린은 물고기의 비늘이라는 뜻이다. 심하고 덜한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비교적 경증의 환자의 경우 피부가 물고기 비늘 또는 뱀 비늘처럼 갈라져 있다. 소보로빵의 크랙처럼 보이기도 한다. 병의 정도가 심한 경우, 마치 피부 전체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고 부풀어 보인다. 표피의 각질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단히 슬픈 이야기지만 이 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는 많은 경우 오래 생존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체온 조절이 되지 않으며 세균 감염에 취약하고 엄청난 수분 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즐겨 보고 있는 드라마 ‘산후조리원’ 이전에 ‘산부인과’ 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나는 어린선을 이 드라마에서 처음 접했다.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둘 중 한 명이 어린선이었다. 극중에서 이 아기도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때는 피부에 관심없던 2년차 대학원생이어서 크게 흥미를 갖진 않았지만 처음 접했던 병의 증상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여지껏 잊지 못하고 있다.


할리퀸 어린선은 ABCA12라는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서 일어난다. ABCA12는 ABC 수송체라는 단백질의 일종이다. ‘수송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우리 세포의 택배 기사 역할한다. 세포막에서 이런 저런 물질들을 안팎으로 배송한다. ABCA12가 나르는 물질은 피부 보호막의 필수 지질 성분인 세라마이드다. 정확히는 epidermoside라고 하는 당이 붙은 일종의 세라마이드다. ABCA12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택배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게 되고 결국 피부에 세라마이드가 공급되지 않는다. 그 결과 어린선의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어릴 적 나는 만화를 보고 따라하기 좋아하는 엉뚱하고 호기심은 많지만 상식은 좀 부족한 아이였다. 한 번은 만화를 보고 따라한답시고 거친 사포로 오른쪽 볼을 마구 비빈 적이 있다. 세상에 얼마나 아프던지. 엉망이 된 얼굴로 한동안 다녔는데 어른들이 이유를 듣고 상당히 황당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단 며칠간 겪었던 그 화끈하고 얼얼한 감각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어린선을 가지고 태어나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없을까. 그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우리와 같은 일상을 이어가는 그들의 위대한 이야기에 대해서 좀 찾아봤다.


칼리 핀들레이는 호주의 작가다. 1981년에 태어난 그녀는 역시 어린선을 갖고 태어났지만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통해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녀 역시 어린선 환자의 전형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게 부푼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작가라는 직업 외에 appearance activist 로도 활동 중이다. 장애로 인한 외모에 대한 차별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 몸을 둘러싼 0.1mm도 안되는 얇은 막이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 우리의 생존을 결정하고 사회적인 인상을 결정한다. 눈에 보이면 떼어내고 벗겨내고 싶은 이 각질은 사실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우리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끔 도와주던 내 몸의 방패이고 나의 수호자였다. 겨울이라 늘어난 각질이 성가시고 수고롭다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한때 내몸을 지켜주고 나를 보호해주던 보호막이 제 할일을 다 하고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약산성 세안제와 피부에 물리적, 화학적 자극이 적은 필링제를 사용해서 이따금 과도하게 쌓인 각질을 제거해주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4 0